299쪽 

 

어느 나라에서는 남자 어린이들에게 소변기 사용 방법을 교육시킨다. 교육이란 소변기 자체 사용법이 아닌, 화장실 안에 여러 개의 소변기가 있을 경우 소변기를 선택하는 방법을 말한다.

아무도 없는 화장실에 들어가 사용할 소변기를 정할 때는 시차를 두고 곧이어 들어올 다음 사람이 사용하게 될 소변기를 염두에 두어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라도 세 개의 소변기가 마련돼 있을 경우, 아무도 없더라도 가운데 것을 써서는 안 되며 화장실이 한적한 경우, 볼일을 보는 사람 바로 옆에 서거나, 화장실이 분주한 경우라도 볼일을 보는 사람 바로 뒤에 바싹 붙어 서서 기다리거나 하는 일을 피하라는 것이다. 언뜻 화장실 매너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지만, 도시인일수록 살면서 타인들을 향해 얼마나 섬세해야 하는지 그 중요성을 알게 해주는 일화다. 겉옷을 입을 떄나 가방을 둘러멜 때도 항상 뒷사람을 치지나 않을까 되돌아보는 사람을 봤으며 지하철역이나 상점들이 많은 곳에서 사람이 다니는 길 가운데를 막고 서있는 상황은 아닌지 항상 살피는 모습이 몸에 밴 사람도 봤다.

둔한 사람이 편할 때도 있다, 라는 말을 나는 아주 어려워한다.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는 사람과 긴 시간을 섞여서 지내햐 할 일이 생길 때면 내 입장에선 아예 억울한 기분마저 들기 떄문이다.

 

제주에서 올라오는 길이었다. 내가 앉기로 되어 있는 비행기 창가 자리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노부부였다. 창가에는 할머니 한 분이 앉고 중간에는 할아버지가 앉아 계시길래 "자리 맞으신가요?"하고 물었다.... 

 

혼자가 혼자에게. 이병률 산문집. 2019. 달 출판사

 

 

혼자가 혼자에게....

여기에서 혼자는 '나'일까 '타인'일까?

혼자인 작가가 혼자인 독자 개인에게 건내는 말일까?

 

어느 인터뷰에서 작가는 말한다. 

 

"앞에 있는 혼자는 나 자신이고 두번째 나오는 혼자는 조금 나은, 괜찮은 형태의 나 자신이기도 해요."

 

세상의 많은 곳을 다니며, 숱한 사람들을 만나는 중에도 여전히 혼자인 나에게 하는 말들을 모은 산문집이다. 서문도 없고, 추천사도 전혀 없이 사진과 목차를 지나 바로 첫번째 글을 만날 수 있는 책의 구성도 재미있다.

 

산문집에서 글의 목차가 뭐가 중요할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40여개 정도의 제목만 꼼꼼히 들여다 보는 것만으로도 사색이 시작된다. 그 중 첫 6개 글의 제목만 뽑아보았다. 작가가 생각하는 방식과 흐름대로 나의 길을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 인생의 파도를 만드는 사람은 나 자
  • 좋아하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모두가 혼자
  • 바람에 동백나무가 잠시 흔들렸습니다
  • 10분 동안만 나를 생각해주세요
  • 그동안 모른 척했던 나 자신이라는 풍경
  • 매일 한 번은 최후를 생각해둘 것

 

299쪽에는 "덜 취하고 덜 쓸쓸하게"라는 제목의 글이 실려있다. 작가 본인이 섬세한 성격이어서 둔한 사람과의 사귐이 어렵다는 내용의 글이다. 그래서, 남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사람과 남에 대해 무심한 사람들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담겨있다. 작가가 예를 들어 놓은 화장실의 에티켓은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신경성이 높은 사람은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행동이다. 아무리 가르쳐도 신경성이 낮은 사람은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도 높다.

 

'덜 취하고 덜 쓸쓸하게'는 일본의 어느 술집에서의 모습이다. 혼자 들어온 손님의 테이블에 수저 세트 하나를 손님이 마주보는 자리에 놓아두는 주인의 배려이다. 누군가 앞에 앉아 있는 기분으로 술을 마시다보면, '덜 취하고 덜 쓸쓸하게' 그리고 더 오래 머물다 가게 된다는 주인의 섬세한 배려인 것이다. 

 

혼자인 것이 너무나 익숙해진 시대에, 나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나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가고자 하는 모든 '혼자'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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